돌로 만든 널[棺(관)]에 유해·껴묻거리[副葬品(부장품)]를 넣은 청동기시대의 묘제. 석관묘(石棺墓)라고도 한다. 지하에 판석·괴석·강돌 또는 이들을 함께 섞어서 직사각형의 돌널[石棺(석관)]을 만들고 그 안에 유해 등을 펴묻기[伸展葬(신전장)]하거나 굽혀묻기[屈葬(굴장)]한다. 봉토나 뚜껑돌[蓋石(개석)] 같은 표식시설이 없어 지상에서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돌널무덤의 기원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시베리아 미누신스크분지의 초기 청동기 문화인 안드로노보기(期)에 이미 판석으로 만든 돌널무덤이 나타난다. 특히 후기에 속하는 카라수크기의 특징적인 유물이 내몽골 츠펑[赤峰(적봉)] 등지의 돌널무덤에서 출토된다. 이 밖에 중국의 산시성[山西省(산서성)] 타이위안[太原(태원)], 쓰촨성[四川省(사천성)] 민장강[岷江(민강)] 상류, 연해주 지방, 그리고 일본의 규슈지방[九州地方(구주지방)] 등에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한국에서는 고인돌[支石墓(지석묘)]에 비해 적게 나타나지만 시베리아지방과 중국 동북지방의 돌널무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청동기문화의 기원문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중국 동북부의 돌널무덤문화는 고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돌널무덤의 형식은 매장시설에 사용된 석재의 성격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벽·뚜껑·바닥을 1개씩의 판석으로 조립한 상자모양돌널[箱形石棺(상형석관)]이다. 규모는 2m 이상에서 50㎝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작은 돌널무덤은 아이들용이거나 2차장의 장법(葬法)을 실시한 것이다. 머리 쪽이 다리 쪽보다 넓은 형태의 널은 시베리아 카라수크 돌널무덤의 전통을 반영한 것이다. 자강도(慈江道) 시중군(時中郡) 풍룡리 유적에서 발견된 동포(銅泡)와 황해북도 사리원시(沙里院市) 상매동(上梅洞) 유적에서 출토된 동촉은 중국 랴오닝지방[遼寧地方(요녕지방)]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문화전파의 경로를 말해준다. 상자모양돌널의 대표적인 유적은 대동강유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지만 전국적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둘째, 풍화암반층을 파고 2개 이상의 판석을 잇대어 세운 형식이다. 대개 낮은 구릉의 꼭대기에 위치하며 4, 5기씩 무리를 이룬다. 이런 형식의 돌널무덤은 중국 북동지방의 츠펑·젠핑[建平(건평)]·지린[吉林(길림)] 등과 두만강유역의 옌지[延吉(연길)] 등과 부여지방을 중심으로 분포하는데 출토물은 간돌검과 석촉이 대부분이지만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송국리(松菊里)의 경우 비파형단검과 동착(銅鑿)이 발견되어 족장의 묘라고 생각된다. 셋째, 네 벽이 판석·괴석·강돌을 섞어서 쌓아올린 형식으로 고인돌의 하부구조와 돌덧널무덤에 많이 이용되었다.